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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의 역사 본문

삽살개 와 진돗개 네눈박이/네눈박이 블랙탄 탄이

진돗개의 역사

태풍노을 2018. 10. 8. 14:49

제가 블랙탄을 기르고 있어 진돗개에 대해서 서서히 알아가는 과정인데요, 진돗개를 알기 위해 진돗개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진돗개에 관심이 있으시면 한번쯤 읽어보시면 상식에 많은 도움 되리라 생각합니다.


 


< 네눈박이 블랙탄 >


한국의 토종 개이자, 국견(國犬)으로서 원서식지는 진도군입니다.

천연기념물 53호지만, 모든 진돗개가 다 천연기념물이 아니라, 진도군 내에서 심사를 받아 통과되면 진도개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로서 보호를 받게 됩니다. 삽살개, 풍산개 등과 함께 한국 고유의 품종인 진도개는 국가에서 직접 관리하는 품종으로 진도개 사업소를 운영하며, 이 곳에서 심사에 통과된 진도개들의 혈액샘플이 보관된다. 국가에서 직접 개의 품종을 관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한다.

 

표준어는 진돗개이나 천연기념물 상에서는 진도개로 등록되어있는데, 이는 원서식지인 진도를 분명히 드러내야한다는 진도 지역의 의견을 문화재청이 수용하여 심사를 통과한 진도군의 진돗개에 한해서만 진도개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여담으로 일반 진돗개도 동물등록증에는 진도견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생김새의 특징으로 겉털은 강하고 윤택하며, 얼굴에는 부드러운 털이 빽빽하고 꼬리의 털은 약간 길며, 털색은 황색 또는 백색이다. 키는 45~53cm, 무게는 15~20kg이며, 얼굴은 정면에서 보면 거의 팔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며, 튼튼한 턱에 전체적인 인상은 다부지다. 색은 개체마다 제각각이지만, 사람들은 진돗개 하면 백구와 황구만이 진돗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귀는 삼각형으로 약간 앞으로 숙여져 있고, 소리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눈맵시는 삼각형이고 홍채는 짙은 갈색을 띤다. 코는 일반적으로 검은색이며 담홍색을 띤 것도 있다. 등은 튼튼하고 직선이며 어깨뼈에서부터 약간 경사를 이루고 가슴이 매우 발달하여 깊이 패이고, 어깨는 튼튼하며 경쾌하고 배는 늘어지지 않는다. 다리는 강건하고 앞다리와 뒷다리는 모두 자연스럽게 똑바로 곧게 선다. 꼬리는 생후 3개월 후부터 말리기 시작한다. 다만, 개체에 따라 말리는 개체도 있고 안 말리는 개체도 있다. 신기하게 꽈배기처럼 나선형으로 말리는 개체도 있다.

 

진돗개의 털색은 통상적으로

 

백구 - 몸 대부분이 흰색 털로 뒤덮인 경우.[4]

황구 - 몸 대부분이 황색 털로 뒤덮인 경우. 어릴 때 재구처럼 재색이었다가 커갈수록 황색에 가깝게 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선 시바견같이 연갈색과 크림색의 털이 나는 경우도 있다.

재구 - 영어로는 참깨(sesame). 회색털이 명암을 달리하며 몸 전체에 퍼져있으며 늑대의 털색과 매우 비슷해 늑대색이라는 별명도 있다.

흑구 - 검은색이 몸 대부분을 뒤덮은 경우.

칡개 - 호랑이와 엇비슷하게 누런 색에 검은 무늬. 범구나 호구로 불리기도 한다. 보통 호구라고 많이 불린다. 이러한 무늬를 브린들이라고 한다. 그 호구가 그 호구가 아니야 아니라고

네눈박이 - 닥스훈트나 도베르만처럼 검은 바탕에 눈 위에 밝은 반점이 있어서 마치 눈이 네 개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무늬를 블랙탄이라고 한다.

  

그러나 털색은 개체의 지표일 뿐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사람포함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 털의 색깔이 변한다. 진돗개의 경우 크게 색깔이 바뀐다고 할 수는 없으나 새하얗던 털이 나이를 먹더니 크림색이 되기도 하고 비절각이나 귀끝꼬리끝에 황색 털이 나기도한다. 황색이던 털색깔이 정수리에서부터 등을 따라 좀 더 진한 갈색 줄이 생긴다던가 비절각에 좀더 진한 색의 털이 난다거나 황색의 털이 색이 희어지는등 전체적인 모색의 채도가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적으로 약간씩 바뀐다. 나이를 먹으면 머리가 희어지는 사람이 있듯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개가 잡종이라 그렇다거나 뭘 잘못 먹여서 그렇다거나 같은 추측성 발언은 삼가자. 개는 그저 주인이 준 밥과 사랑만 먹었을 뿐 털색이 바뀐다고 주인이 바뀌지 않는다. 당신이 개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을 뿐이다.

이 색은 혈통적으로 각각 고정된 것이 아니라 부모 모두 백구나 황구일지라도 때때로 흑구 등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주류인 백구나 황구와 달리 흑구나 네눈박이가 특유의 공격성과 지배욕이 강하다는 근거 없는 소문에 따라 이쪽이 원조라는 주장도 있지만 견종 기준을 정할 때 황색/백색으로 모색을 통일했기 때문에 아직까지 천연기념물 진도개는 백구와 황구만 인정한다고 합니다.



진돗개의 기원 및 역사


우리 선조들은 특정한 용도로 가축을 개량하는 일이 없었다. 이것은 개도 마찬가지로, 아침이 되면 주인이 챙겨주는 밥을 먹고 나가 다른 개들, 들개와도 자유롭게 어울려 놀다가 밤이되면 돌아와 집을 지켰다. 부족한 먹이는 쥐나 토끼같은 소동물을 직접 사냥해 해결했다. 주인이 사냥꾼이면 주인따라 사냥개로 참여했다.

짝을 찾는것도 자유로워 옆집개 뒷집개 가리지 않고 교미해 새끼를 낳다보니 아비 어미를 알길이 없어 똥개라 무시당하기도 했다. 단백질이 부족한 농경사회에선 노동력을 보태는 소를 잡기 어려우니 복날 개고기로 희생되어 어르신들 건강에 이바지한 경력도 있다. 소위 방목 반, 방임 반인 환경에서 한반도의 개들은 생존을 위해 홀로 살아가는 능력을 키울 수 밖에 없었고 일정부분 들개와 같은 특징과 야생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듯 한반도의 개들은 무작위로 번식하여 이렇다할 품종의 개념이 없었고 생김새에 따라 바둑이,백구, 누렁이 등으로 나눈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교역, 전쟁같은 일부 요인을 제외하면 외국개의 혈통이 유입되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몇가지 특이한 형태(삽사리, 발바리)를 제외하곤 대부분 비슷비슷한 개(뾰족한 귀, 서거나 말린꼬리, 충성심, 경계심)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진도의 개들은 대륙-반도-섬으로 한번 더 고립되었기 때문에 비교적 같은 형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진돗개가 계획적인 육종을 거치지 않은 자연견종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조상에 관해서는 몇가지 가설이 있다.

 

선비가 데리고 다닌 암캐가 늑대와 교배하면서 태어났다는 구전설, 송나라와 교역이 활발하던 시기에 도입되었다는 중국 유입설, 고려 삼별초군 정벌때 몽고에서 들여온 몽고(북방견) 유입설, 호주 야생견등과의 외형적인 유사성에 따른 남방 유입설 등등으로 다양한데, 말만 무성하지 이렇다할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다만 일본의 교수가 각 견종의 혈청단백질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한국의 개들은 동남아-류쿠같은 남방계보다 북사할린이나 몽골의 견종과 유사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이는 한국개가 북방견의 직계후손이라기보단 동북아시아에서 유래된 조상견이 점차 남하하면서 동북아-한국-일본의 순서대로 견종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진돗개가 유명해진게 무슨 국뽕바람이니 다른 나라도 대표 견종이 있으니 우리도 하나 만들자 해서 나왔다느니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니 하는 헛소리도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진돗개가 알려진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치하인 1938년 조선총독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기 대문이다. 조선총독부가 진돗개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이유는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일본인 학자 모리 다메조 교수[6]의 건의 때문이었다. 모리 교수는 조선어사전의 편찬에도 참여한바 있고, 조선총독부직속 고적조사위원회 위원이자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회 위원이다.

 

다음은 조선일보 19373월호에서 발췌한 내용.

 

반도(半島) 동물계(動物界)의 권위(權威), 경성제대교수(京城帝大敎授) 모리() 박사는 진작부터 반도의 남단(南端) 다도해(多島海) 중의 큰섬 전남 진도(全南 珍島)에 순조선산(純朝鮮産)의 양견(良犬)이 있다는 것은 전해듣고 있던 차, 2월 상순부터 약 2주간 동섬에 체재하며 실험연구한 결과, 이것이야말로 동교수가 다년간 탐구하여 얻어려고 했던 세계적 양견(世界的 良犬) 순수한 동아계통(東亞系統)의 개라는 것이 판명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이것들은 현재 육식용(肉食用)으로서만 이용되고 있는 것인데, 동 박사는 한시라도 속히 이것들을 구해 군견(軍犬), 엽견(獵犬), 번견(番犬)으로 그 진가를 십분 발휘하도록 할 것과 귀성(歸城, 경성으로 돌아옴)하여 서둘러 천연기념물보존령(天然記念物保存令)에 의해, 내지(內地)의 추전견(秋田犬, 아키타켄) 토좌견(土佐犬, 토사켄)처럼 보존지정견(保存指定犬)으로 하고자 목하(目下) 관계방면(關係方面)과 교섭중이다.

 

진도견은 명견(名犬) 추전견과 같은 크기로서 동일계통으로 보이는 스마트한 체격(體格)을 지녔으며, 들이랑 산에 풀어놓으면 굉장한 스피드로 달리는 영맹(獰猛)함을 지니고 있으나, 반면에 사주(飼主, 주인)에 대해서는 비상히 온후(溫厚)하고 독실(篤實)하다고 말하며, 꽤나 친분(親分)한 성질을 지닌 인상이다. 개의 생명선(生命線)인 후각(嗅覺)도 역시 비상하게 발달되어 있고 극히 민감 영리(敏感 怜悧)하다.

 

모리 박사의 연구가 발표되자마자, 우리 축견계(畜犬界)에 다대한 센세이션을 던져주고 있지만, 세계(世界)의 공기(空氣)가 점점 더 뒤숭숭해지고 있어, 고양이도 작자(杓子, 국자)까지도 국방자원(國防資源)으로 끌어넣고 있는 이 무렵에, 이 같은 명견(名犬)이 발견된 것은 군민일반(軍民一般)에게 의지를 북돋우는 일이라 할 것이다.

 

모리 교수는 내선일체를 말하는데 유력한 자료가 된다며 총독부에 건의했는데 다음과 같은 기술하고 있다.

 

즉 중앙아시아에서 만주를 거쳐 한국으로 오고 다시 일본으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계통의 개 후예가 한국 전역에 번졌으나 근래 서양개나 다른 개들이 섞여 귀는 축 쳐지고 꼬리도 내리는 잡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진도만은 섬이라 교통이 불편하여 다른 개의 출입이 적어 비교적 순수한 한국원형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진돗개와 일본개와의 관계는 내선일체를 말할 유력한 자료가 되어 학술상 귀중한 개이다.

 

진돗개는 귀가 서고 꼬리를 만 한국 고유의 개로서 성능이 우수하고, 다른 장점도 많으며 한,일 관계를 설명하는 유력한 자료가 된다. 학술상으로나 실용상 귀중한 개이므로 이 개는 천연기념물로서 우수한 순종개가 되도록 보호하는데 노력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 생각한다.

 

보다시피 내선일체를 강조하기 위해서라지만 의도 자체는 문제가 있더라도 그 내용은 석기시대 사람들이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민족 이동했다는 말이니 딱히 잘못된 말은 아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민족이동했다면 왜곡이겠지만... 한국인도 일본인도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학설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다. 현대에는 이 학설이 많이 부정되는 편이라지만, 20세기 상당기간동안 이것이 통설이었고 한국과 일본에서는 상식으로서 더 오래 통했기 때문에 모리 교수가 악질적으로 왜곡한 건 아니다.

 

한편 모리 교수는 진돗개의 특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 우수성을 예로 들면 결벽성이 강해 개집에서나 집안에서 똥을 누지 않고 반드시 밖에 나가서 누며 청각이 예민하여 집안 사람과 발소리만 듣고 짖기 때문에 번견으로 알맞다. 특히 진도견의 특징으로 후각이 예민하여 고양이마냥 집안 쥐를 잘 잡는다든가 산에 가면 새나 토끼의 냄새만 맡고도 곧 찾아내 잡는 기교가 있다. 또 삵잡이 개는 냄새로 삵굴을 찾아내 발로 파서 잡거나 밤에 닭을 잡기 위해 집 근처에 나타나면 포위해서 잡고 만다. 한편 노루잡이 개는 노루를 쫓아가 잡는다. 그러므로 사냥개로 훈련하면 그 능력이 자못 기대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진도개는 일본개와 같이 주인집 사람들에게는 잘 따르나 다른 사람은 좀처럼 따르지 않는다. 즉 자기를 애무하고 자주 접촉하는데는 무의식적으로 생겨난 본능적 애모심일라 할까, 복종심이 상당히 강하다. 따라서 다른사람에게 보내질지라도 옛주인을 잊지 않고 새 주인에게 쉽게 따르지 않으며 멀리 떨어지더라도 옛주인을 찾아 돌아온다. 이처럼 귀가성이 뛰어나다. 이 밖에 진도개는 주의심이 깊고 경계심이 뛰어나며 아직 야성이 많이 남아 있어 다른 개와 싸울 때는 등허리의 털을 세우고 용맹스럽게 덤비며 민첩하다.

 

(이상 모리 교수의 연구 번역은 김정호 저 진도견에서 발췌.)

 

그 결과 1937년 천연기념물로 선정되었고 이듬해인 1938년 천연기념물 제53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4081일 총독부 고시 제815호에 "진도 본도 지역내에 있어 진도견 이외의 축견(畜犬)을 사양(飼養)하는 때 또는 진도견 및 그 생산견(生産犬)을 그 지역 외로 반출(搬出)하는 때는 소할 도지사(所轄 道知事)의 허가를 받을 것"이라는 령이 내려진다.

 

보다시피 일본인이 보기에 진돗개가 보존도 잘 되어 있고, 혈통도 우수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할 가치도 있어보여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다. 덕분에 일제가 개털가죽을 군수물자로 얻기위해 실시한 야견박살’(野犬撲殺)령에 수많은 개들이 죽어나갔으나 진돗개는 천연기념물로 보호받아 그 혈통을 보존할 수 있었다.

(삽살개는 거의 멸종 될 정도로 야견박살 하였습니다.)

 

해방 후 진돗개 등록제도는 유지되었으나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잘 지켜지지 않았는데 1952년 이승만이 이 이야기를 듣고 진도개 보호에 힘쓰라는 말이 나왔고, 1962년 정부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 1967년 한국진도견보호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오늘날 유명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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