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마음이 비에 젖다~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제정 목적 및 성격, 시대적 배경, 운영원칙, 주요 사회보험 복지국가에 미친 영향 본문

리포트 자료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제정 목적 및 성격, 시대적 배경, 운영원칙, 주요 사회보험 복지국가에 미친 영향

태풍노을 2022. 6. 3. 15:10

. 서론

 

사회보험제도는 경제활동인구를 사회복지제도 내부로 편입시킴으로써 사회복지의 범위를 노동시장의 생산관계 영역으로 확대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보험제도의 발달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개를 떠나서는 파악할 수 없다. 원래 시장경제란 시장 만에 의해서 통제되고 조절되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시장만의 지배를 받는 독립적인 경제제도, 특히 정치로부터 제도적으로 분리된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러한 자기조절적시장경제는 모든 생산이 판매를 위한 것이고, 모든 수입이 그러한 판매에서 기인하며, 모든 상품의 생산과 판매질서가 오직 시장의 가격체계에 의해 확보되고, 또 산업의 모든 요소를 위하여 시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제정 목적 및 성격, 시대적 배경, 운영원칙, 주요 사회보험 복지국가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 본론

 

1.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제정 목적 및 성격

 

1)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제정 목적

1880년대 독일이 사회보험을 도입할 무렵 독일의 노동운동 세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이들은 사회민주노동당을 창당하고 1871년 제국의회 선거에서 2인의 노동자 대표를 의회에 진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 1874년 선거에서는 9인의 대표를 의회에 진출시켰다. 1875년에는 노동운동의 우파인 라살레파와 좌파는 고타에서 합류하여 사회주의노동당을 결성하였다. 노동운동의 좌파와 우파가 망라된 강한 노동자 계급 정당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강력한 군비확장으로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발생하는 계급갈등, 즉 노동계급과 충돌이 빚어졌고, 융커(대지주)계급 출신이었던 비스마르크와 의회를 장학하고 있던 신흥부르주아계급과의 갈등이 빚어졌다. 단순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급 갈등이 아닌, 융커와 신흥부르주아 그리고 노동자 간의 삼각관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노동문제가 새롭게 대두되었다. 불공정한 분배와 도시빈민 증가, 노동착취 등의 심각한 노동문제가 나타났다. 여기에 사회주의 사상이 전파되면서 이들은 점차 조직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소외되었던 노동자들은 마침내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노동계급의 성장은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융커와 신흥부르주아에게 위협이 되었으며 한편으론 자신들의 편에 끌어들이면 좋은 대상이었다.

 

이러한 배경아래 비스마르크는 노동계급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아야 했고, 그들에게 당근을 선사하기로 결심하다. 그 당근이 바로 '사회입법' , '사회보험'정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노동 탄압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정책이 바로 1878년에 제정한 '사회주의자진압법'이었다. 바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면서 노동계급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2)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성격

실업보장, 노후보장, 질병보호, 폐질자의 생계보장 등 일련의 복지정책으로 나타난 사회입법은 노동자 내지 빈곤층의 요청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 아니라 비스마르크의 주도하에 하향적이었고 가부장적인 입장에서 여리고 약한 노동, 극빈층의 보호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원의 공정한 재분배라든가 또는 인권 및 인간의 존엄성 확보 등 사회, 정치 질서 속에서 산업화의 부산물로 생겨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의 겉모습과는 달리, 비스마르크의 주목적은 사회주의 발전을 제약하려는 것이지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리고 프로이센의 봉건적 지배 질서를 오래 존속시키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노동자 계급에 대해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견제적 조치이자 사회주의 강압책에 대한 보충적 조치였다.

 

2.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시대적 배경

 

1871년 독일제국의 탄생은 유럽의 기존 질서를 바꾸는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의미하였다. 독일제국의 탄생 전까지 유럽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의 5개 강대국이 존재했다. 그러나 독일제국의 탄생으로 유럽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독일이라는 새로운 5대 강국체제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새로은 국제체제의 형성은 새로운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독일의 통일과 제국의 탄생에는 비스마르크라는 지도자가 그 중심에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독일통일을 위하여 외교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러나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는 제국의 안보와 발전을 위해서는 유럽의 안정이 최우선이라고 판단하였다. 비스마르크는 이를 위해 동맹정책을 통한 현상유지 정책을 추구하였다. 19세기의 유럽의 외교결정을 논함에 있어서 지도자, 특히 독일의 비스마르크를 빼고는 유럽에서의 국제정치를 설명할 수가 없다. 그 당시는 정책이 황제나 수상을 비롯한 개인의 자질에 의해서 결정지어지던 시기였고 비스마르크는 유럽의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비스마르크가 유럽에서 추구했던 정책은 현상타파적 도전이 대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가능한 많은 당사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수립하고 중복되는 동맹체제들을 구축하며, 그에 따른 영향력을 경합국가들의 요구를 완화하는데 사용함으로써 현상유지를 시도하였다. 통일과정에서 독일에게 패배한 프랑스는 언제라도 복수를 하고자 하였고, 러시아는 독일과 불안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로 부터의 위협을 방지하고 독일제국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유럽에서의 강대국의 전쟁발생을 막기 위하여 최대한의 동맹확보를 통한 현상유지 정책을 추구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50여년의 평화는 이처럼 강대국사이에 세력균형을 만들어 놓은 비스마르크 외교의 결과였다.

 

3.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내용

 

1) 사회입법의 기본 방침

강제보험

제국보험공단의 중앙집중식 통제

사보험회사의 배제

국가보조금 지급

 

2) 산재보험

비스마르크는 1980년 산재보험법의 초안을 작성하게 하고 제국보험공단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그는 산업재해의 보상 책임을 자본가가 아닌 국가가 지고, 국가의 직접적인 보조가 필요하며 사보험회사가 국가의 책임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 할 수 없다하여 국가 보조금을 매우 중시하였다. 또한 이로 인해 노동자가 국가에 통합 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이는 노동계의 좌파지도자, 사회주의자, 보수적인 자유주의자 등 좌우파 양쪽에서 큰 비판을 받아 의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비스마르크는 사회보험의 재정을 주로 자본가들에게 부담시키면서 노동자들의 충성심을 융커계층이 쥔 국가로 유도하는 동시에 사회보험 기구 속으로 모든 계급을 편제화 시켜 의회를 무력화시키려고 하였다. 의회는 이를 간파하여 1884년이 되서야 통과시켰다. 이 공업재해보험법은 노동자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자본가들이 산재보험의 조직을 장악하도록 만들어 졌다. 대신 자본가들은 제국 보험 공단의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만 했다.

 

3) 의료보험(질병보호법)

의료보험이 독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시기는 1883년으로 질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 치료, 질병 후의 건강 보장 및 소득 보장을 위한 부조, 임신, 분만에 대한 보조, 아동 교육을 포함한 가시부조, 농업 경영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경영의 부조, 사망에 따른 현금 지급 등의 업무가 포함된다. 비스마르크는 원래 질병보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는 의료보험이 노동자들에게 주는 원조는 단기적인 성격이므로 노동자와 국가와의 유대를 진작시키는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료보험은 쉽게 의회를 통과하여 세계 최초의 사회보험이 되었다. 이 법에 의해 중앙집중식 관리기구를 두는 대신에, 질병금고(sickness funds), 지역질병금고(local sickness funds), 교구금고(parochial funds)를 만들어 관리하였다. 질병금고(직장 및 직종 의료보험)는 이미 질병 급여를 제공하고 있었던 기존의 길드, 공장, 기업 빛 상호 부조 조직이 중심이었고 지역질병금고(자영인 의료보험조합)는 자영인인 소매업자를 대상으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교구금고(지역 의료보험 조합)는 여기에 가입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보험료는 통상 노동자가 2/3, 사용자가 1/3을 분담하도록 했다.

 

4) 연금

비스마르크는 국가의 연금을 수령하는 국민들이 많다면 그들이 국가에 충성하고 사회를 통합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장기보험인 연금보험에 관심을 두었다. 그리하여 1889년 노령폐질 보험이 시작되어 직접적인 국가 보조가 행해졌다. 하지만 조합주의적 조직을 강화하는데 실패하였다. 보험부담금은 부담이 노사 양측이 각각 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는 노동자들의 불만을 감소시키고 노동자들을 국가에 결합시킴으로서 기존의 질서의 안정에 이해관계를 같이 하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이 법에 따르면 소득 수준이 낮은 노동자 및 사무원들도 보험에 가입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부담이 갔을 거라고 추측된다.

 

4.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운영원칙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제도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 노동시장 참여에 따른 소득, 소득에 따른 보험료 기여가 있어야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둘째, 비스마르크식의 사회보험은 전형적인 소득비례방식으로 소득에 비례해 기여를 하고, 기여에 비례해 급여를 받는다. 셋째, 비스마르크식의 사회보험은 사회보험 가입자의 기여로 재원이 조달되고 운영된다. 넷째, 전형적인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은 파트타임노동자별·지역별 조합에 의해 운영되는 조합주의 방식으로 노동시장의 지위가 그대로 반영되는 체계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비스마르크식 사회보험, 즉 현실의 사회보험은 비록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그 핵심원리는 노동시장 참여에 따른 소득, ‘소득에 따른 보험료 기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이 있는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사회보험의 주요 재원이 바로 보험료 수입이기 때문이다. 즉 국고지원이 이뤄지긴 하지만 사회보험제도는 기본적으로 보험료 수입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보험료 수입에 의존한 사회보험제도가 안정적이고 장기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재원 확보, 즉 안정적인 보험료 수입이다. 때문에 임금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직장보험에 가입할 경우에는 장기적·정기적인 보험료 납부가 가능한 노동조건을 가입의 전제로 삼기때문에 일정수준이상의 임금, 노동시간, 고용계약 기간을 유지해야 한다. 또한 고용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직장보험의 보험료는 노동자와 기업주가 공동 부담하는 형식이다. 고용관계가 정확해 임금노동자인지, 고용주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으면 보험료 공동부담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장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고용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5. 주요 사회보험 복지국가에 미친 영향

 

1) 영국에 미친 영향

영국에서는 1908년에 무갹출노령연금이 제정되었다. 1908년에 제정된 무갹출노령연금은 그 후 1911, 1920, 1924년에 각각 개정되었는데, 그것은 소득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 때부터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인구의 노령화로 인해 연금수급자는 예상 이상으로 늘어났고 비용은 대단히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 대책으로 나타난 것이 1925년의 갹출제 과부.고아 및 노령연금이다. 이 연금은 질병보험과 결부되어 균일갹출 균일급부의 형태로 되어 일종의 연금보험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이 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의 생활보장체계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점하게 되었다.

 

2) 프랑스에 미친 영향

프랑스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 불황과 사회혼란을 배경으로 해서 여러 가지 사회적 입법이 나타났다. 프랑스의 노동재해보상법으로는 처음으로 1910년에 제정된 노동자.농민연금보험법 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법 규정에 대해서 노사 쌍방에 보험료를 강제 징수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려 결국, 이 제도는 충분한 보험급여를 행할 수 없게 되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후 공무원, 해운, 광산 등 특수한 산업부문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입법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사회보장입법이 이루어 진 것은 1928년부터 1930년 사이였다.

 

1928년에는 프랑스 전국에 걸친 제1차 사회보험법이 의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노사단체, 농업단체, 의사단체, 공제조합 등이 강력히 반대하여 결국, 시행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 후 반대의견을 반영하여 법을 개정하였는데, 일정액의 임금수입을 갖지 못하는 상공업부문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해서, 이들의 질병 ?출산폐질 ?노령 ?사망 등의 보험사고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의 프랑스 사회보험입법에서 특이한 것은 1932년의 가족수당법의 제정이었다. 프랑스에서는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가족수당제도가 기업가 측으로부터 먼저 제안하였다. 그것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였다. 이러한 노동관습을 기초로 해서 다자가정(多子家庭)의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가족수당을 기업가의 의무적 갹출금으로 급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프랑스가 가족급여제를 정착시킨 것은 다른 나라 보다 빨랐는데, 그 제도는 후에 프랑스에서 출산율이 극도로 저하되어 인구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더욱 발전하여 프랑스 사회보장제도의 중요한 지주가 되었다.

 

3) 오스트리아에 미친 영향

1차 세계대전 이후 공적연금제도는 당시 전쟁 후유증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적용대상확대에 있어서 도입이 가능한 직종 에 대하여 개별적으로 적용하게 되었다. 즉 직종에 따라 새로운 독립된 제도를 도입하였는데, 이러한 각 제도별 발전은 당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는 발전 형태였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제도간의 마찰과 연계미비 등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35년 생산직근로자와 농민 및 목축업 자, 사무직근로자를 근로계층으로 묶어 하나의 법으로 통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경제활동자에 대한 사회보험법(1935)이다. 이후 193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1945년까지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합병되어 독일제도의 적용을 받게 되었다.

 

4) 미국에 미친 영향

독일에서 처음 도입되고 영국에서 실험을 거친 사회보험은 1930년대 미국에서 대공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적용되었다. 1935년에 제정된 사회 보장법은 연방정부가 관장하는 노령보험, 주정부가 관장하고 연방정부가 재정을 보조하는 실업보험, 그리고 주정부가 관장하고 연방정부가 재정을 보조하는 공공부조와 사회복지서비스로 구성되었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전통이 워낙 강하여 공적인 사회복지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이 아주 척박한 미국에서 연금과 실업보험이 수용된 것은 대공항이란 위기 상황 속에서 루즈벨트와 같은 강력한 행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의 사회보장제도는 별로 달라 진 것이 없다.

 

19세기말에 접어들어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앞 다투어 사회보험 (social insurance) 제도를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선진 자본국가들에게 이러한 사회보험제도의 도입은 사회보장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6. 시사점

 

사회보험은 노동이라는 상품의 시장성과 노동의 소유자인 근로자의 삶의 비시장성 사이의 괴리를 축소시키는 사회통합의 도구로 등장하였다. 개인의 자조의 원칙과 사회적 연대의 원칙, 그리고 국가책임의 원칙을 유연하게 결합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사회보험제도는 19세기 자유방임주의자들이 분리를 시도했던 경제와 정치의 원칙을 다시 결합하게 하였다. 또한 사회보험제도는 중산층을 사회복지체제로 편입시킴으로써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전 사회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하였다. 사회보험의 자조의 원칙과 사회적 연대의 원칙은 베버리지 보고서에 이르러, 귀속적 욕구라는 규범적 기준을 할당의 기초로 하는 보편주의적 할당원칙과 결합하게 되었다. 베버리지는 상당부분 조세로 충당하는 포괄적인 사회보험제도를 전 국민에게 보편주의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이라는 사회악을 추방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사회보험은, 비스마르크가 그것을 통해 노동자들의 사회주의로의 경도를 막으려 했던 것과는 달리, 보험이라는 계약관계를 통해 전 국민에 대한 보편적 사회권 보장의 방법이 되었다. 다만, 영국에서 보편주의적 사회권은 국민 최저의 목표였던 것에 반하여, 스칸디나비아에서 보편주의적 사회보장의 목표는 평등주의적 적정수준의 보장이 되었다. 사회보험의 근원지인 독일에서 사회보험은 위계적 차등을 유지하는 사회연대의 수단이 되었고 사회권이라는 위계에 부수적인 산물이었다.

 

이와 같이 상이한 해석과 구상으로 다양한 사회보험제도가 발전되어 왔다. 이러한 사회보험제도의 다양성은 각국의 정치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것이며, 그것을 이해하는 데 복지자본주의 체제유형론의 기여가 크다.

 

. 결론

 

지금까지 본론에서는 1880년대 독일 비스마르크 사회입법의 제정 목적 및 성격, 시대적 배경, 운영원칙, 주요 사회보험 복지국가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설명해 보았다. 시행초기의 사회보험법은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다. 사회보험의 대상이 임노동자 특히, 육체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었으며, 자본제적 생산양식에서발생한 문제인 사회적위험에 대한 대응책이었고, 그 재정을 노동자와 자본가가 공동부담하는 가장 대표적인 자본주의 사회복지정책이었다.

Comments